정주/불혹

박노해를 만나던 날

빛의 염탐꾼 2010. 1. 26. 17:30

 그런 선배가 있었다. 1990년 여름 쯤이던가, 자기를 박노해라 떠들던, 아니 어느 싯구의 구절속에 있는 박노해가 자기라고 우기던, 아니 그건 사실일 수도 있다. 그 이야기는 대강 이렇다.

 

그당시, 나는 문화운동단체에서 유인물과 하등 다를바 없는 시를 써고 있었고 그 선배는 꽹과리를 치고 있었다. 그 선배의 여자후배가 그 당시 어느대학학보사에서 주최하는 문화상의 시부문에 당선되었는데 그 시의 제목이 '박노해를 만나던 날' 이었다.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시의 내용은 그 당시 대학생 사이에서 유행하던 의식화학습을 소재로 한 것이었는데 새로운 사상을 접하고 어쩌구저쩌구 세상에 대한 새로운 눈을 떴다는 그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그러니 당연히 그 선배는 그 시의 소재에 나오는 박노해가 자기라고 했던 것이다. 자기가 그 후배, 아니 여자친구를 학습시켰으니 자기가 박노해라고 말이다. 앞뒤 정황을 살펴보면 그런 말이 나올법도 하다. 그당시 유행하던 노선이니, 사회구성체니 하는 선가르기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 그가, 아니 실제로의 박노해가 이번엔 사진을 들고 우리앞에 나타났다. 10년에 걸친 뒤늦은 독일유학기간, 모든 기존관념을 벗어버리려고 노력했다는 여자후배가 불러서 그 전시회를 따라갔다. 10년이나 운동에서 자유스러워지고자 했던 그녀도 20대의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나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박노해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듯..... 얼굴없는 시인에서 혁명가로, 그리고 다시 분쟁의 현장을 찍는 평화운동가겸 사진가로.... 그는 우리앞에 섰다.

 

터키의 쿠르드족들이 겪고있는 억압의 현장에 지금 그의 시선은 박혀있다. 터키정부는 쿠르드해방전선의 식량공급기지가 될 것을 우려, 쿠르드인들을 정착지에서 몰아내고 임시로 옛거주지에 들어가 경작할 수 있는 허가증을 주고 있다. 그 허가증을 들고 쿠르드인들은 그 땅으로 들어가서 힘겹게 밭을 일구고 있다. 이건 도대체 절망일까? 희망일까?

 

어쩌면 희망과 절망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 둘은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샴쌍둥이처럼 한몸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폭격으로 무너진 현장을 걸으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신부같은 아니면, 해탈한 노승같은 표정은 지금도 여전하다. 출옥후 변한 그의 시작품 행간에서 풍기던 종교인의 냄새는 더 짙어진 것 같아 보였다.

 

한때, 바뀐 그의 시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대던 때가 있었다. 돌아보니 그 때 나는 철부지였다. 아니, 지금도 철부지이다. 그리고 오늘, 평화운동가와 테러리즘이라는 또하나의 동전을 본다.

 

얼굴없는 시인과 혁명가라는, 테러리즘과 평화운동이라는 말속에 들어있는

 

그 각각의 밑바닥은 어쩌면 하나의 원천을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침묵과 불, 고요와 열정이, 한 얼굴에 스며있음을..... 개인적으로 나는 한 때 그가 정치권으로 들어갈 것이란 예측을 한 적이 있었다. 어리석은 나의 그 예측은 보란듯이 빗나갔다. 그는 정치판이라는 철새의 이동이 아닌 분쟁와 학살의 현장으로 수평이동했다.

 

어쩌면 이 나라의 정치판이 받아들이기에는 그는 생각과 행동은 너무 튀었는지도 모른다. 보수정치판은 접어두고서라도 진보진영조차 그를 받아들이기에는 벅찼을지도 모른다. '사회주의'라는 그가 외친 네마디의 구호는 아직도 우리땅에서는 금기의 언어이다.

 

그가 이후 어떤 모습으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지금 그가 행하는 평화운동은 여전히 그 옛날의 그와 닮아 있는 것 같다. 이름없이 조용히, 그러나 여전히 모험적이고 돌발적이고 예측불허인 상태로 말이다.....

 

새벽의 서울역에서 첫차를 기다리다 잠을 떨어진 사람들..... 우리에게 첫차는 다시 올까. '첫차를 기다다리며' 열심히 노래하던 정태춘도 노래를 잠시(?) 접고 있는, 21세기도 벌써 10분의 1일 지나가고 있는 지금

 

새벽 일찍 지방출장을 가는지, 신입사원들의 눈매는 살아있다. 이것 또한 희망일까? 아니면 절망일까? 어쨌든 KTX 첫차가 와서 후배는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