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불혹

옛집에서 놀다 2 - 마을에서

빛의 염탐꾼 2010. 8. 4. 18:15

 옛집에서 한동안 무위도식 하던 때의 나의 공간이다. 오랜만에 김민기가 부르는 '고향가는 길'을 들어보려고 cd를 꺼내 작은 오디오에 넣으니 노래가 들리다 끊어졌다를 반복한다. 사람도 기계도 자주 만나지 않으면 멀어지는 법인가 보다.

 

여기에서 무위도식 할 때 사놓고 좀 읽다가 쳐박아둔 좀 부담가는 책들이 눈길을 끈다... 아젠 다시 가까이 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좀 서글퍼진다.

 

고향집 옥상에서 바라본 마을풍경, 사진 중간에 마을을 상징하는 300년이 넘은 소나무가 보이고 멀리 백암온천지구가 보인다.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바라본 마을풍경, 바로앞 엄나무 뒤의 고향집과, 멀리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겨져 사용되지 않는 중학교가 보인다.

 

마을의 오래된 우물에서, 이 우물은 천연샘물을 이용한 마을 우물이다. 사시사철 일정한 온도, 당연히 여름엔 얼음장처럼 차고 겨울엔 훈기가 도는 샘물을 콸콸 쏟아내던 80년대 초순까지, 정식 상수도 시설이 세워지기 전의 마을의 간이상수도를 책임지던 곳이다.

 

우리마을, 50여호(?) 가정의 집집마다 공급하고도 남는 샘물을 쏟아내던 곳,,,, 지금도 옛집에 가면 나는 이 새물을 길어 먹는다. 세월이 변해도 변하지 않은 곳중의 하나이다.

 

우리마을 상소태(소태2리)에서 하암(소태3리)로 넘어가는 길에 생긴 생태습지, 백암온천에서 나오는 페수가 이 옆에 있는 하수종말처리장에서 1차로 걸러지고 1차로 걸러진 물을 이곳의 인공습지로 다시 끌어올려 층층으로 된 습지를 따라 내려가면서 2차 정화과정을 거친다. 우리마을은 오지마을로는 보기 드물게 하수종말처리장을 갖춘 곳으로 90퍼센트의 농촌적 특색에 10퍼센트 정도의 도시적인 특색이 나타나는 곳이다. 나의 중간자적 성격이 이곳에서 배태되었으리라....

 

생태습지 안에 외홀로 존재하는 고사리가 눈길을 끈다. 옛집에서 무위도식하던 어느 비오는 봄날 여기로 산책을 왔었는데(그땐 하수종말처리장은 있었지만 생태습지는 만들어지기 전이다) 질좋은 고사리가 지천으로 깔려 있었고 그걸 보고는 비가 오는 것도 잊은채 고사리를 한아름 꺾어서 집에 가니 그걸 본 어머님이 이런 고사리는 처음 본다면 그걸 온천단지에 가서 만원주고 팔고 온 적이 있다. 다 오래전의 일이다.

 

계단식으로 이루어진 인공습지, 습지 가장자리로는 부들을 비롯한 창포, 버드나무 등이 심어져 있고 습지 중간으로는 어리연들이 자라고 있다.

 

윗습지에서 아래습지로 물이 흐르고

 

그렇게 2차로 정화된 물이 하천으로 배출된다. 이 물이 흘러흘러 소태3리와 광품을 거쳐 남대천을 이루어 동해로 흘러 들어간다.

 

소태3리가는 온정천 주변의 풍경, 하얀 화강암 암반이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보이는 저 보 위로 지금소라는 한길이 넘는 소가 있었고 이 아래로 역시 한길이 넘는 제2 제3 지금소가 있었다(지금도 한길이 넘는지는 모름) 지금소라는 명칭의 유래는 모르지만 초등학교 4학년시절이던가, 방과후 이곳에서 놀던 초등6학년생 누나 2명(?)이 소에 빠져죽은 적이 있었다. 한동안 학교에서 방과후 수영금지령이 내려지고 몇일간 물에 빠졌을때 대처하는 법등을 배우던 기억이 언뜻 떠오른다.

 

저 절벽 아래로는 지금도 사용하는 콘크리트로 된 인공수로가 있고 절벽 중간 다른곳에 비해 색이 하얀 곳에 큰 통나무에 홈을 파서 만들어진 나무수로가 바위를 가로질러 연결되어 있었다. 당연히 좀더 높은 곳에 위치한 논에 물을 대기 위해서.... 8-90년대 쯤에 사용이 중단된 그 나무수로가 예전에는 보였는데 어느해의 홍수로 인해 떠내려가고 보인지 않는다. 예전에 볼때마다 한번쯤 사진을 찍고 싶었었는데..... 벼와 쌀로 대변되는 한반도(특히 오지농촌)  고난의 논과 물을 위한 투쟁의 역사가 생각되는 곳이었는데.... 

 

마을의 오래된 소나무, 언제쯤인가부터 300년이라는 표지를 달고 변함없이 서 있다. 그러고도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 지금은 연륜을 더했으리라. 우리마을은 2월부터 4월까지 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백암산을 넘지 못하고 요동치던 곳으로 한마디로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아마 방풍림으로 처음 심어졌으리라. 어머님의 말에 의하면 이 소나무 엎으로도 오래된 소나무가 대여섯그루 늘어서 있었는데 오촌 아저씨가 방탱이(함지박을 의미, 그때는 플라스틱이 없던 시절이니 나무로 만든게 인기가 있었으리라)를 만든다고 다 베었단다. 그 소나무들이 건재하고 있다면 아마 장관이리라. 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고... 지금은 그저 솔무례(솔모롱이가 변한 말인듯) 명칭이 그 때의 작은 기억이나마 힘겹게 부여잡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을 비롯, 여러번 모진 바람에 가지가 잘려나가 보은 정이품송만큼의 위용을 자랑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이놈이 천연기념물로 등록되는 그날까지 살고 싶다..... 세계문화유산으로의 등록도 아니고 고작 천연기념물에 목숨을 걸다니, 나란놈은 하여간 ㅋㅋ

 

워낙 고목이라 그 사이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다. 종류가 다른걸로 봐서 소나무의 씨는 분명 아니다. 다른 놈의 씨를 받은게 분명하다.  

 

백암한화콘도의 족탕 시설, 천연온천수를 끌어올려 발을 담그고 피로를 풀기 쉽게 만들어 놓았다.

 

끌어올려진 천연온천수,,,, 섭씨 48정도

 

역시 이곳도 무위도식하던 기간에 자주 이용하던 단골터이다. 밤이면 이곳까지 산책을 나와서 발을 담그고 갔다.... 화살에 맞은 사슴도 아니면서 말이다. 하긴 가슴 한구석, 상처로 아픈 때였지... ㅋㅋ(백암온천의 유래에 화살에 맞은 사슴과 나뭇꾼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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