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바람따라 구름따라

무등(無等)을 보며

빛의 염탐꾼 2010. 12. 14. 00:16

5년하고 반년 만에 무등엘 갔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여름 산 같은/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오후의 때가 오거든/내외들이여 그대들도/더러는 앉고/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서정주, ‘무등을 보며, 전문)

 

첫날 토요일, 토끼등에서 바라본 덕산너덜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을 모르듯 대동아공영권과 황국신민화를 부르짖었던  시인 서정주도 무등을 보며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었다. 6.25 동란 후 몇 년인가를 시인 서정주는 광주에서 기거하며 조선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동란의 상처가 가시지 않아 그 당시 대학의 교수에 대한 처우는 말이 아닐 정도였다. 내남없이 모두 궁핍하던 때인 만큼 점심을 굶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을 테고 불가항력으로 일생에 처음 당하는 물질적 궁핍 속에서, 크고 의젓하고 언제나 변함없는 무등산을 보며 시인은 이 시를 썼을 것이다. 문학작품을 둘러싼 서로 다른 해석과 친일과 관련된 그의 문학적 삶이 자발적 동원이냐 아니냐에 대한 많은 이견은 있을 수 있겠지만 위의 시를 읽으면서 든 나의 생각 중 분명한 것은 어설픈 해탈과 달관은 날선 풍자와 해학보다 힘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첫날 바라본 무등산의 산그림자

 

많은 이들이 그렇게 노래했고 그보다 앞서 많은 사람들을 향해 너른 품을 펼쳐 보이고 있는 무등은 그렇듯 등급이 없는 평등의 산인 것이다. 한문을 몰랐던 부드럽게 우는 법을 몰랐던 갑오년의 농민들도, 제국주의와 독재의 군화발에 숨죽이던 오월광주의 민중들도 무등의 고르고 넓은 능선을 보며 쓰리고 아픈 가슴을 혁명에 대한 굳은 의지로 바꾸었을 것이다.


둘째날, 꼬막재를 지나 바라본 호남벌과 나지막한 산들의 그려내는 풍경이 그림같다.

 

하늘아래 모든 것엔 등급이 없다는 무등, 그 산을 오른다. 그러나 그 말은 현실 앞에 무력한 이상일 뿐이다. 평등가치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현실에선 나약한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은 자연과 인간, 제국주의와 식민지로 갈라지고 다시 빈부의 차이로 이어지며 지배와 피지배는 공고해진다. 자연은 인간의 권력이 착취하는 최하층의 대상이 되고 그 위에 정보와 통신, 자본과 기술을 선점한 신자유주의의 제국은 시장을 미끼로 자연을 넘어 인간의 육체까지 계량화시키고 식민화 시킨다.

 

앞에 보이는 산은 북산, 2005년 3월, 저 산을 거쳐 무등을 가로질러 군부대를 거쳐 천황봉을 올랐다.

 

무등의 북동쪽인 북산을 오른다. 능선이 가파르다. 세상이 여기까지 오는데도 많은 이들의 죽음이 있었다. ‘골고루 등 따시고 배부른 세상’을 향해 온 몸을 던졌던 이들, 그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삶은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른다. 넓게 이어지던 호남정맥 마루금이 북산을 지나 무등의 바로 아래에서 무엇인가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조릿대와 암석지대의 길없는 능선을 힘겹게 통과하니 정상의 능선부다. 공군부대의 허가를 얻어 그들과 동행하여 무등의 정상부를 통과한다. 누군가의 말로는 제주도까지 방어하는 미사일기지란다. 무등의 정상부 또한 현실이 그러하듯 평화와 공존이 아닌 폭력과 전쟁을 위한 시설이 독점하고 있구나! 어쩌랴,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잘 살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구호는 헛말이다. 세상사에 등급도 차별도 없다는 말 또한 헛말이다. 무한경쟁의 틈바구니로 끌여들이기 위한 사탕발림이다.

 

북산으로부터 이어지는 무등산의 억새밭

 

군부대의 시설물이 둘러싼 천왕봉을 지나 다시 내려간다. 다른 곳에 비해 간격이 넓다지만 무등에서도 등고선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구나! 그게 세상사인가? 서석대와 입석대를 지나 장불재에 다다르니 여기가 산속인지 도심속의 어느 공원인지가 분간되지 않는다.  

 

규봉암으로 가는길에서 바라본 화순쪽 풍경

 

북산을 오를 때부터 넓어지기 시작한 등산로가 ‘민간인 출입금지’의 절대권력의 밀실(?)에 의해 좁아드는가 싶더니 서석대에서 폭을 늘린다. 등산로폭, 침식깊이, 나지노출폭 등 등산로의 훼손상황을 알리는 아라비아 숫자가 1미터를 훌쩍 넘기더니 10미터까지에 이른다. 사람의 삶이 이름을 얻으면 피곤해지듯이 산도 마찬가지다. 호남정맥의 이름없는 산을 지날 때와 달리 곳곳이 상처 투성이요, 요란한 문구와 소음이 산을 덮는다. 그렇게 이름은 명예를 낳고 권력을 부른다. 헛된 공약을 남발하는 것도, 속이야 어떻든 세련된 이미지로 포장해대는 것도 다 명예 때문이고 권력 때문이다.

 

화순쪽의 나지막한 산들과 들판이 그려내는 풍경또한 멋지다.

 

백마능선을 지나고 926봉을 지나 안양산을 향한다. 호남벌이 한눈이 들어오고 뒤로는 무등이 본래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듣던 대로 무등이다. 편안하고 너른 가슴이다. 그런데 저 넓은 몸 속 곳곳은 상처 투성이다. 인간의 욕심과 평등의 가치는 끊임없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충돌하면서 자연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인간 또한 자신도 모르게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무등의 상처가 정상부에서도 깊이 패인 골짜기에서도 더는 깊어지지 않기를..... 그 또한 욕심이다. 안타깝지만 그저 바라볼 일이다.

 

이국적으로도 다가오는 풍경이다.

 

무등을 오르는 오늘은 토요일, 단촐한 수의 탐사대가 말없이 빠른걷기로 일관하던 분위기가 약간 소란(?)스러워지고 보폭도 한결 너그러워(?)진 날이다. 광주녹색연합의 여성회원들이 다수 함께한 결과다. “새끼들 학교갈 준비는 해놓고 산에 왔냐”고 물었더니 교육부에서 실시하는 마지막 주 토요일휴무의 첫날이란다.

 

무등다운 풍경 앞에서 한동안 발을 멈춘다.

 
사람들의 휴일이 많으면 산의 상처는 더 깊어질 것이다. 그렇게 인간과 자연은 공존이 불가능한 존재인가? 아닐 것이다. 절대평등이야 있을 수 없다지만, 평등을 향한 가치추구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면, 인간에게 휴식이 있듯 자연에게도 휴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유명계곡과 등산로에 대한 자연휴식년제는 대폭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아니, 우리들이 달콤한 휴식을 원하듯 자연 또한 휴식을 원한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2005년 3월, 호남정맥 환경탐사 무등산 구간의 탐사후기)

호남벌 푸르른 길이 아득하고 아득하다.

 

규봉암 주변

 

규봉암 주변, 주상절리가 빚어내는 병풍이 그림같다.

 

장불재를 향해 가는길.... 멀리 안양산이 보인다.

 

장불재 가는길에서 본 풍경

 

무등산의 꽃, 서석대와 입석대

 

2005년 당시 깊숙히 파여있던 등산로는 이렇게 정비되어 있고

 

2005년, 등산로폭, 침식깊이, 나지노출폭 등을 노트에 기록하던 때가 잠시 떠오른다.

 

주상절리가 만들어내는 장관, 입석대 

 

천연기념물이다. 철원과 연천에 이어 유독히 주상절리를 자주 만나는 한 해다.

 

입석대 바로 앞에 있는 누군가의 무덤

 

막혀있는 무등산 정상부를 향해 가는 길

 

입석대 지나서 바라본 화순쪽 풍경

 

멀리 보이는 안양산과 백마능선

 

서석대 풍경

 

서석대에서 담양쪽을 바라봄

 

 

아래는 같은 호남정맥 탐사기간 중 강천산 탐사후기입니다.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

봉준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포(砲)들이 땅의 아이들처럼 울어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들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 황동규의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 전문 -




1.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포크레인 소리 요란한 강천산은 쉽사리 속을 드러내지 않았다. 강천산에 접어든 첫날은 날이 저물어 서둘러 하산하였고, 눈을 비비고 일어난 둘째 날 주룩주룩 자욱한 안개 속에 굵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비가 그치고 다시 강천산을 올랐다. 그러나 웬걸, 오르면 오를수록 안개는 더 깊어지고 사위는 온통 안개바다였다. 전체를 조망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들어선 길에서 길이 끊겼다. 내려가니 바위사면이 이어지고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잘못 들어선 것이다. 안개 속 정국의 갑갑한 시민들처럼 안개 낀 호남정맥 마루금에서 탐사대원들의 발엔 힘이 풀렸다. 철수가 결정되고 바위사면과 조릿대 지역을 힘겹게 통과하여 하산하였다.

내려오는 길에서 정상부에서도, 입구에서도 들려오던 포크레인 소리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강천산테마파크 건설현장, 바위절벽이 많은 강천산의 한 절벽에 인공폭포와 공원을 만들기 위해 10여대의 포크레인이 바위절벽을 파내고 있는 중이었다.

내려오는 길은 수해복구와 테마파크 건설로 인해 계곡 전체가 파헤쳐져 있었고 물은 제 색깔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호남정맥 탐사대는 강천산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 다시 셋째 날, 어제의 굴복이 자연의 힘 앞에서의 굴복이었다면 이번엔 예상치 못했던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사현장을 통과해 강천산 마루금으로 올라가려하니 관리사무소 직원이 길을 막았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된단다. 이유를 묻자 등산객의 안전을 위해 군수가 직접 지시를 내렸단다. 그러면 안전하게 공사지역만 통과시켜주면 되지 않느냐는 말에 다시금 말을 바꾸었다. 그것 말고 플러스 알파가 있단다. 자기는 모르는 일이고 군수의 지시를 따를 뿐이라고 제발 물러서란다. 할 수 없었다. 속 보이는 행동에 속이 타지만 물러설 수밖에…. 속을 쉽게 열지 않는 강천산엔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탐사는 다시금 권력의 힘 앞에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관리소의 말단 공무원의 뒤엔 시설관리사업소의 소장이 있고 또 그 뒤엔 군수가 있고 도지사가 있고, 강천산의 바위절벽을 파내는 포크레인 뒤에는 건설업체의 사장이 있고 도급을 주는 더 큰 업체가 있고 또 또 또…… 어쩌면 그 뒤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가 있고 또 그 뒤엔 돈을 교주처럼 숭배하는 우리들의 욕망이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나도 먹고 살아야죠’ 제발 돌아가라는 관리소 직원의 말에 묻어있는 비애처럼 강천산의 바위절벽은, 아니 자연은 세상의 말단이 되어 희생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절대평등이 있을 수는 없지만 조금이나마 약한 것에 눈이 가는 세상을 꿈꾸며 지친 하루가 저물었다.


2.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호남정맥 4차탐사는 눈에서 시작해서 눈으로 끝난 탐사였다. 기상청의 예보를 비웃으며 쏟아지는 폭설로 자주 길이 막혔다. 고당산을 오르고 망대봉을 오를 때 쏟아지던 눈에서부터 괘일산을 향해가던 마지막 날까지, 눈은 우리의 길을 막고 자연의 힘을 보여주었다. 묵묵히 그 소리를 들을 수밖에…. 그리고 다시 꽃샘추위, 어느 날의 반팔이 하루가 가기 무섭게 두꺼운 외투로 바뀌고 장갑과 털모자가 다시 등장하였다. 기온에 속아 시도 때도 없이 피어나는 가을개나리처럼 성급하게 봄을 노래한 우리들이었다. 아니 우리는 개나리보다 못한 놈이다. 기온에 적당히 기대어 자연의 힘을 우습게 아는 놈들이다. 꽃샘추위와 눈보라는 어쩌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봄은 그리 쉽게 오는 것이 아니라고, 순백의 가루처럼 뿌려지는 눈(雪)같은 정갈한 눈(眼)을 가지고 꽃을 볼 마음이 없는 자에게는 봄은 오지 않는다고….



마지막 날에도 눈보라가 날렸다. 철수하면서 대각마을에서 바라본 호남벌엔 눈이 한창이었다. 동학과 오월 항쟁과 해방의 땅이자 학살과 눈물의 땅위로,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무식하게.

이제 우리가 그렇게 내릴 때다.

(2005. 03. 14 호남정맥 환경탐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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