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자작시

가을날

빛의 염탐꾼 2016. 10. 21. 16:49

가을날

2016. 10. 21

 

 

갈대처럼 흔들리며 아무 일 없었다

대나무처럼 꼿꼿하게 아무 일 없었다

모나게 뾰족하게 아무 일 없었다

둥글게 둥글게 아무 일 없었다

사시사철 시퍼렇게 아무 일 없었다

단풍 들고 낙엽 지듯 아무 일 없었다

초록물결에도

만산홍엽에도

 

아무 일 없었다

 

꽃이 피고 새가 날고 아무 일 없었다

꽃이 지고 새가 울고 아무 일 없었다

천둥치듯 벼락치듯 아무 일 없었다

태풍처럼

소나기처럼

아무 일 없었다

흩어져라 부서져라 아무 일 없었다

모여라 뭉쳐라 아무 일 없었다

지리멸렬하게 가열차게 아무 일 없었다

유유자적하게 치열하게 아무 일 없었다

대동단결 대동결사로 아무 일 없었다

최후통첩 결사항전으로 아무 일 없었다

위악에서 위선으로 거짓에서 기만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며

 

아무 일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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