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자작시

안동

빛의 염탐꾼 2018. 11. 25. 18:06

안동

 

 

시퍼런 등줄기와 뱃속으로 서해 왕소금이 팍팍 뿌려지고

나서야 고등어의 삶은 비로소 완성된다 사람들 가슴속엔

저마다의 바다가 있어 사할린을 넘어 북태평양을 향하던

망망한 내륙의 꿈, 안동역에서가 뜨고 난 후에

안동에 처음 가봤다는 가수 진성의 이야기처럼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모든 꿈은 허무한 맹세가 되어 바람에 날리는데

십년 넘게 유럽에서 공부하고 온 후배에게서 부지불식간에

나타나는 예의범절을 압구정동에서 카페 고등어를 했던

선배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모르기는 매일반이다

 

전통과 현대는 갈등하고 있는지 아니면

타협하고 있는지 이도 저도 아니고 조화를 핑계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당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삶은

어쩌면

절여질 대로 절여진 것이라서

 

헛제사밥의 허기와 장난기와 헛헛함

찜닭의 애간장 타는 농축과 숙성

식혜의 맵싸한 고춧가루 부대 같고

 

봉정사 극락전의 배흘림기둥으로

제비원 석불의 넉넉한 가슴으로

낙동강 반변천의 구절양장으로

우뚝 솟은 전탑의 옹고집으로

 

몽실언니와 권정생 선생이 부르는

자발적 가난과 동화의 나라로 니껴,

느긋함과 천연덕스러움 혹은 니더,

순박과 능청의 세계로 할미탈의 재치와

초랭이탈의 풍자와 해학의 세계로

날마다 우리를 초대하는데

 

구순이 가까워오는 모친은 요즘도 장에 나가면

싼 고등어를 한소쿠리씩 사와서 나를 열 받게 하고

남향인지 북향인지 도무지 방향을 알 수 없는 집들이

어깨 걸고 나란히 모여앉아 바람을 타는

그 곳, 한국정신문화가 무엇인지

좆도 나는 모르지만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봤을 때 한 귀퉁이에 간고등어가

살짝 보인다면 사는 맛이 더 나는 건 사실이다

 

 

 

 

진성의 안동역에서와 김창완의 어머니와 고등어가사를 차용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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