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자작시

두 번째 겨울

빛의 염탐꾼 2018. 11. 20. 15:47

두 번째 겨울

 

 

 

바람은 동쪽에서 불어왔고 서쪽에 있는 큰 산을 넘지 못해 언제나 마을에서 맴돌았다 며칠 전에는 재 너머 동네에 혼자 살던 은둔형외톨이가 생을 놓았다고 했다 누구인가 내어놓은 들고양이밥을 먹었다고 했고 또 어떤이는 쥐약을 먹었다고도 했다 나도 몇 번 보았는데 뭘 찾고 있는지 늘 고개를 숙이고 느리게 걷는 것이 나와 무척 닮아 있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새벽마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먼 남도의 유배지를 빼닮은 바람소리, 이불을 끌어당기는 뒤척거림 끝엔 오늘은 꼭 문풍지를 달아라 오백년 묵은 소나무도 부러뜨리는 바람이다 잠귀 밝은 어머니의 잔소리가 해소 천식에 섞여 어김없이 낮게 들려왔다 스스로 유폐된 고독이여 아침마다 머리 풀고 큰절을 올릴 님 계신 궁궐도 하루 세 번 무릎 꿇고 향하는 메카도 없이 하루는 끝도 없이 늘어나기만 해서 때를 놓친 늙은 호박이 돌담 위에서 해골처럼 뒹굴고 밤마다 도둑고양이가 그 위를 지나가면 개짓는 소리만 가득차는데 외풍에 문풍지가 뭔 소용이래요 따지 않고 그대로 둔 감나무에도 까치는커녕 까마귀도 오지 않아요 보세요 그 많던 까치밥도 다 떨어지고 몇 개 남지 않았어요 짜증섞인 나의 대꾸마저 잦아드는 두번째 겨울 외로움도 우울도 계절을 타기는 마찬가지여서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던 들판의 갈대마저 누워버리고 숨어 흐느끼던 강물 소리도 들리지 않을 쯤이면 세상을 떠돌던 온갖 소리소문마저 풍문과 낭설로 굳어지고 봄이 오면 봄이 오면 하던 마음속의 작은 동요마저도 얼어붙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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