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자작시

빛의 염탐꾼 2019. 4. 5. 15:20

    

 

사월엔 우리 모두 무릉으로 떠나요

수컷들은 삼삼오오

컴퓨터게임 도원결의에 모여

전장에 나서는 사람들처럼

결의에 찬 의형제를 맺고

온라인 채팅방 복사꽃 아래에서

처음으로 만난 남녀는

마음에 없어도 뭉쳐야 산다

바로 연인관계를 맺고 잠자리를 하지요

 

온몸에 열꽃이 피어 며칠째 누워 있어요

도화살 그거 역마살보다 무서운 거라는데

더 이상 도발할 기운도

핑계거리도 남아 있지 않아요

꿈에 자꾸 도원이 어른거려요

도원은 여기서 얼마를 가야 하나요?

즙이 줄 줄 흐르는 잘 여문 복숭아 한 입

물어봤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고작 복숭아라니?

죽은 도연명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겠구나 얘야

어쨌든 그게 하늘의 뜻이라면

천도를 줄까? 황도를 줄까?

 

를 아십니까?

 

발정의 색깔은 분명 연분홍빛

정액냄새는 하얗고 누런 밤꽃이 아니라

복숭아꽃에서 난다는 것에

아담과 이브 앞에 서 있었던 나무가

사과나무가 아니라는데 나머지 생을 걸어 볼까요?

내일 비록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내 무덤가에

한그루 복숭아나무를 심겠어요


흐드러진

복숭아

복숭아

복숭아

나무 아래


나비와 벌들이 꿀을 빨고

나는 잠든 애인의 젖을 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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