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
초식동물들의 배가
남산만큼 부풀어 오르고
어떤 무덤가에서는
곡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처서 백로 다 지나고
한 조각의 햇빛조차 아까운 노부부가
서로의 흰 머리카락을 비비며 조는 사이
제철 맛을 잃어버린 끝물채소들이
더 많은 열매를 달고
빗물을 가득 채운 해골바가지처럼
길가의 늙은 호박들이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그믐의 수만큼 제 모습을 감추고
목 빼고 기다리는 하루치의 보름(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자신도 모르게 양을 늘리거나 크기를 키우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잃어버린 초심이여
비워내지 못하는 발정기의 슬픔이여
모든 언약들은
봉숭아 꽃물 되어 지워져가고
배롱나무의 붉은꽃은 늘 백일천하의 완성
굵고 실하지 못하면 태어나지 않음만도 못한
가을이 온다 해도
더는 내어줄 것이 내겐 없나니
미쳐 날뛰는 것들이여
그래봤자 한철이라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구월만 같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