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의 넓이
벤치는 혼자서는 절대 인생 샷을 건질 수 없는
둘이서 수줍게 손을 잡고 앉아 있어야 어울리는 넓이를 가지고 있고
그 뒤로 머리가 희끗한 초로의 신사가 하품 나는 길고 긴 축사를 하기에
안성맞춤인, 만약 그 사이에 누군가가 끼어 세 사람이 된다면
아마도 영역싸움을 위해 모종의 암투가 벌어질 것 같은 곳
한적한 공원 한 모퉁이
벤치멤버로 전락해서
멀리서 운동장을 지켜보고 있는 나에 대해
생활이 없다 노동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또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찾아 볼 수 없다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나는
다른 이에게 곁을 내어줄 마음의 여유가 조금도 없다
중국어에서 둘은 얼(二)보다 량(兩)과 랴(倆)를 쓰고
셋 또한 싼(三)과 싸(仨)가 같이 쓰이는데
하나를 의미하는 이(一)와 동일어는 두(獨)이고 보면
둘 사이에서 부는 바람과 셋 사이에서 부는 바람은 분명 차이가 있고 하물며 혼자 일어나는 바람의 느낌은 말해 무엇하리
이십대 시절 밤이슬을 맞고 들어오는 나의 등에 대고 어머니는 자주 말했다
한뎃잠 자지 마라 입 돌아간다
적당히 한 때
풍찬노숙과 비박을 꿈꾸지 않은 자가 어디 있으랴
다수의 오십대 가장들이 넋 놓고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를 본다는데
알고 보면 그건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는 선언과 다름 아니고
일찍이 현실의 길을 걸어갔던 이들은 강 저편에 있고
또 어떤 이들은 한 때의 풍찬노숙성 이력을 팔러 다니느라 저잣거리가 떠들썩한데
청춘의 질풍노도에는 늘 댓가가 따르는 법이어서
죽기 전에는 절대 화해할 수 없는 세상과의 불화
하루하루 변해가는 폐인의 형상으로 홀로 남은
나는
비빌 언덕과 기댈 나무그늘은 보이지 않고
영정사진이 곧 인생 샷이 되는 객사(客死)의 배경으로 적당한
혼자서는 절대 앉을 수 없는 넓이를 가진
이 벤치에
그저
큰대자로 드러눕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