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장기하락 국면에서는 떨어지는 추풍낙엽도 조심해야 됩니다 창이 아니라 방패의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재테크 채널에 나온 투자전문가가 낙엽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초등학교 시절 어디론가 한없이 떨어지는 꿈을 꾸고 발버둥치다 깨어난 아침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
그건 키가 커지려고 그런 거란다
그럼 작달막한 이 키와 몸무게는 그렇다 치고 오십 줄에도 그런 꿈을 꾸는 건 또 뭔가요?
학창시절 성적이 떨어졌다고 담임한테 매를 맞았어요 그때부터 기량발전상과 성적향상상같은 오르는 것들이랑 나와는 궁합이 영 안 맞았나봐요
어른이 되는 게 두렵지 않냐고요?
그걸 꼭 말로 해야 되나요?
떨어지는 것이
금리이든
주식이든
물가이든
부동산이든, 그도 저도 아닌
오동잎 한 잎 두 잎이든
귀뚜라미 울음소리든
모두 모두
한 끗 차이, 강보합세 그거 알고 보면 장기하락세인거 아시죠? 안간힘으로 버텨보시든지 마음을 비우시든지 좌우당간 둘 중 하나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스물두 살, 훈련소 입대 하루 만에 이유도 없이 다리가 부어올랐다 별다른 훈련도 없었기에 모두들 의아했다 그냥 스트레스를 좀 받았구나 하며 하루를 넘겼다 오른쪽 다리가 두 배 가량 부어오른 셋째 날 아침 국군통합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보자마자 군의관은 한 시간만 늦었으면 다리를 잘라내야 될 상황이라고 겁을 주고는 바로 수술을 집도했다 마취상태라서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군의관과 대화하다 바로 잠들었다 수술 후 한 쪽 다리가 온통 미이라처럼 변한 나를 보고 뒤늦게 달려온 어머니와 이모는 대성통곡 했다 마취에서 깬 상태라 드디어 통증이 시작 되었지만 대성통곡에 묻혀 아픈지도 몰랐다 그리고 육 개월 후 나는 전역했다 흔히 말해 의과사제대 공식적인 이름은 불명예전역이었다 군대이든 결혼생활이든 세상이든 안 맞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을밤에는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결혼사진과 상장과 상패로 둘러쳐진 거실에 앉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전역을 한 달 앞둔 병장의 마음으로
정년이 일 년 남은 교장이나 면장의 기분이 되어
상패의 먼지를 털고 훈장을 닦자
명예와 오욕은 하나의 동전으로 굴러다니는
그보다 더 눈부신 것도 없다
그보다 더 스산한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