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분
한동안 싸늘했다
긴 옷으로 갈아입었다
다시 한동안 조금 더웠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추분 무렵이었다
자주 사칙연산을 푸는 꿈을 꾸었는데
다른 문제에 늘 똑같은 답을 달고 발버둥치며 깨어났다
로또복권을 살까 말까 꿈속의 숫자를 헤아리며 길을 걷는데
떨어진 은행알을 밟아 똥 밟은 기분이 되었다
아침마다 공원에서 반복재생되어 들려오는 트로트메들리를 들었다
오랫동안 같다에 대해 생각했다
생이 어떤 신파극처럼
느낌 없이 흘러가고 있었고
잠시 이수일이 나쁜 놈일까? 심순애가 나쁜 년일까? 아니야 김중배와 다이아몬드가 더 나빠,라는 생각을 했고
며칠이 지나자 그 놈이 그 놈,이라는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종종 아랫배가 아팠는데
그게 사촌 때문인지 땅 때문인지 식단을 점령한 그 나물에 그 밥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사돈도 없는데 팔촌이라는 단어가 늘 입가에 붙어 다녔고
티브에서는 왕의 위와 거지의 위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튼튼할까와
바보와 천재의 아이큐 차이는 한자리수일까? 두자리수일까?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었다
행복감을 느끼는 절대적 아이큐와 이큐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호기심이 잠시 일었지만
그 와중에 나는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는 무용담일까? 성공담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페미니스트들이 끔찍이도 싫어하는 현모양처론일까?가 더 궁금했다
어차피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젓가락질을 잘해야만 숟가락질도 잘하는지
성인이 된 쌍둥이의 키가 진짜로 똑같은지
그런 비생산적인 것에 자꾸만 관심이 갔으나
식상하고 지루하게 밤과 낮의 길이가 다시 역전되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어떤 날에는 천둥이 울리고
뒤이어 번개가 칠 시간을 계산해 보았지만 늘 예상보다 앞서
소리와 빛의 혈통과 순혈주의란 무엇인가?하는 의문이
번개처럼 머리를 때리고 지나갔다
태초의 말씀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하루하루가
일란성쌍둥이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똑같아 똑같애
혀를 차는 그런 기분의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