草
풀이 죽었어요 어릴 적 할머니와 어머니는 대청마루에 마주앉아 이불 홑청에 풀을 먹이면서 풀이 죽어 말했어요 하루 종일 뼈빠지게 일만 해도 입에 풀칠하기 벅차구나 그때부터인지도 몰라요 민초라는 단어만 들으면 속에서 울화가 치미는 건 그게 애당초 높은 분들이 만들어낸 백성들을 깔보는 상대성호칭 자신들은 난초를 치며 기와집에서 호의호식하며 살 테니 백성들은 초가집에서 평생 풀죽어 지내라는 말 아니던가요 나훈아가 들으면 섭섭할 지 모르겠지만 잡초는 그래도 잡치는 맛이라도 있지 어쨌든 민초라고요 풀떼기만 먹고 질기게 질기게 생명력을 이어가는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그게 다 일반화의 오류 아닌가요 지금도 종로3가에 있는 김수영 생가터에 가면 그 싯구에 초치고 싶어져요 이게 다 죽 쒀서 개 주는 꼴 아니고 뭔가요 찾아보니 김수영 시인이 죽은 그해 유월은 아장아장 내 돌이였고요 반백년이 훌쩍 지나가고 길가엔 여전히 먼지만 풀풀 나는 풀뿌리 민주주의 좋아하시네 어쨌든 백성이 근본이고 내일은 해가 뜬다고요 그게 초본이요 목본이요 글쎄 풀은 죽었다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