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독서일기

보르헤스 전집 5 - 셰익스피어의 기억

빛의 염탐꾼 2008. 8. 24. 06:31

보르헤스 전집 5 - 셰익스피어의 기억

(황병하 옮김, 민음사)

 

 

1부 모래의 책

 

타자/울리카/의회/더 많은 것들이 있다/<30>교파/은혜의 밤/거울과 가면/운드르/지친 자의 유토피아/매수/아벨리노 아레돈도/원반/모래의 책

 

후기

 

2부 셰익스피어의 기억

 

1983년 8월 25일/파란 호랑이들/빠라셀소의 장미/셰익스피어의 기억

 

책 뒤의 작품해설 중의 한부분을 인용하여 한 작품을 소개해본다. 몇일 전에 읽은 진중권의 '미학강의 3'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지친 자의 유토피아>이다.

 

'앞에서 유사 고고인류학적 환상성, 이중성, 리얼리즘적 경이성과 같은 세 가지 중심적 주제에서 다소 유리된 작품은 [지친 자의 유토피아]와 [셰익스피어의 기억] 이라는 것을 밝혔었다. [지친 자의 유토피아]는 평원을 지나다 수천 년 후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일종의 공상과학 단편이다. 보르헤스는 영미권의 대표적인 공상과학소설들을 번역해 스페인어권에 소개시킨 적이 있을 정도로 이 장르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중에서 SF적 상상력이 구체적으로 적용되어 있는 작품은 [지친 자의 유토피아] 단 한 편뿐이다. 이 작품에서 우리 시대의 삶에 대한 회의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평원의 방랑자가 마주친 미래 세계는 <사실> 없어진 사회이다. 대신 그 사회에서는 의심과 망각의 예술이 지배한다. 사람들은 개별성을 나타내는 이름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불필요한 책을 무한히 증식시키는 폐해를 막기 위해 인쇄술 또한 사라지고 없다. 재산이 필요 없으므로 돈이 없는 이 세계에서는 인류를 계속 유지시킬 필요가 없다는 뜻에서 단 하나의 자식만을 낳는다. 그들은 더 이상 사랑이나 우정이 필요없게 되는 100세가 되면 예술 중의 하나, 철학, 또는 수학을 공부하거나, 혼자 두는 장기놀이를 하면서 원할 때 자살을 한다. 시간의 여행자가 만난 그 미래의 사람은 그렇게 자의에 의해 자살을 함으로써 자신들은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물론 풍자를 저변에 깔고 있지만 수많은 유태인을 죽음으로 보냈던 히틀러는 그들에게 박애주의자로 비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소각장을 통해 다시 현세로 돌아온 주인공의 서재에는 지금도 그 미래의 인물로부터 얻었던 기이한 재료로 그린 그림 한 편이 걸려 있다. 비록 그 안에 새로운 형식의 유토피아에 대한 알레고리를 깔고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은 공상과학적 상상력에 기대어 있기 때문에 확실히 초자연적 현상에 대해 초자연적 해석을 가하고 있는 경이marvel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