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나는 지금 세상에 절여지고 있는 중이다
황해 짜디짠 왕소금을 온몸에 끼얹고
시퍼런 희망의 풀내를 지워내는 중이다
싱싱함으로 힘을 뽐내던 여름은 가고
알차지 못하면 들판 가득 버려질 수밖에 없는 몸
계절의 바람에 송두리채 뿌리뽑힌
꿈의 생채기를 넘어
생살 도려내는 아픔을 견뎌내야 하는데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몸짓
지금 난
통통한 속살 가득 칼자욱을 그어
남은 피를 뚝 뚝 떨구어내는 중이다
그리하여 언젠가
세상에 절여지고 절여져서
몇 겹의 주름투성이 알짜배기
최초의 신선함으로 남아
비틀어지고 마른 몸뚱아리 사이로
고추가루 마늘 범벅을 칠하며
붉은 빛깔로
맵고 짠 맛으로
태어날 때를 위해
시린 바람 거뜬히 이겨낼
겨울 식단의 주인으로 오를 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