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자작시

배추

빛의 염탐꾼 2008. 8. 24. 20:33

배추

 

 

나는 지금 세상에 절여지고 있는 중이다

황해 짜디짠 왕소금을 온몸에 끼얹고

시퍼런 희망의 풀내를 지워내는 중이다

싱싱함으로 힘을 뽐내던 여름은 가고

알차지 못하면 들판 가득 버려질 수밖에 없는 몸

계절의 바람에 송두리채 뿌리뽑힌

꿈의 생채기를 넘어

생살 도려내는 아픔을 견뎌내야 하는데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몸짓

지금 난

통통한 속살 가득 칼자욱을 그어

남은 피를 뚝 뚝 떨구어내는 중이다

그리하여 언젠가

세상에 절여지고 절여져서

몇 겹의 주름투성이 알짜배기

최초의 신선함으로 남아

비틀어지고 마른 몸뚱아리 사이로

고추가루 마늘 범벅을 칠하며

붉은 빛깔로

맵고 짠 맛으로

태어날 때를 위해

시린 바람 거뜬히 이겨낼

겨울 식단의 주인으로 오를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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