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텃밭-생활의 발견

도종환의 시를 읽다.

빛의 염탐꾼 2009. 2. 23. 23:57

오후 5시 30분이면 KBS1에서 방영하는 동물의 왕국이란 프로그램이 있었지요.

지금도 여전히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아무리 자유로운 언로를 막는 정권이지만

그 프로그램에서 정치적 색깔(?) 운운하며 개입하지는 않았을테니

폐지되지 않고 지금도 하겠지요..

어쨌든 명색이 유아 프로그램이니까요...

 

예전에 그 프로그램중에 나오는 사자와 기린이야기를 보다가  

저도 모르게 '동물의 왕국-초식과 육식에 관하여'라는

시를 끄적거린 적이 있었지요. 

사자와 기린으로 대표되는 육식과 초식동물을 이야기하면서 미국이라는 국가의 육식성으로 의미를 확대하여

이러쿵 저러쿵.... 리듬도 긴장감도 없는 그저 목소리만 높은 그런 시를 썼었다는게

오늘 배달된 도종환 시인의 '군무'를 보니 생각나는군요.

 

매나 독수리같은 맹금류로 대표되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자연의 법칙이

절대법칙이 아니라는 것을 잔잔한 호수를 배경으로 한 새들의 군무를 통해 조용히 전해주고 있네요.

 

"서넛이 팔을 끼고 손에 지갑을 들고 사무실을 나서거나

일곱 씩 열씩 모여 떠들며 한 끼의 식사를 위해 몰려가는

점심시간의 마포나 강 건너 여의도 또는 구로동 골목에서

물새들을 본다

간혹 물가 빈터에 세운 운동장에서

축구경기를 보며 함께 소리 지르고

함께 날개를 세우는 군무를 볼 때도 있고

몇 해에 한 번은 어두운 하늘에 촛불을 밝히고

몇 십만 마리씩 무리지어 나르는 새떼들의 흐르는 춤을

볼 때도 있다"고 노래하면서도

 

한편으로 "먹고 사는 일이 멀리서 보는 것과 달라서

그리 녹녹한 일은 아니지만"이란 구절로 절대다수 민중들의 조용한 몸짓속에 숨어있는

아픔을 떠올리고

화려한 몸짓의 달변이 아닌 자신의 삶에 충실한 조용한 울림으로

자유와 연대를 통한 평화의 소중함을 새들의 군무처럼 조용히

그리고 평화롭게 보여주는....

 

그러나 그 있는둥마는둥한 조용한 흐름 또한

가끔씩 몇해에 한번씩 촛불을 들 수밖에 없음을

말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도 그리고 평화로운 새들의 군무 속에도 존재와 삶의

고단함이 도사리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은 

절대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는것을.....

 

 

군무 - 도종환

 

우포늪에서 무리지어 내려앉는 새떼를 본 적이 있다

분홍빛 발갈퀴를 앞으로 뻗으며 물 위에 내리는

그들의 경쾌한 착지를 물방울들이 박수를 튀기며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노을 물든 하늘 한쪽에 점묘를 찍으며 고니떼가

함께 날아오르자 늪 위를 지나가던 바람과

낮은 하늘도 따라 올라가 몇 개의

커다란 곡선을 그리며 기쁜 숨을 내쉬었다

먹고 사는 일이 멀리서 보는 것과 달라서

그리 녹녹한 일은 아니지만

그들의 눈은 맹금류처럼 핏발 서 있지 않았다

솔개나 올빼미가 뜰 때는 주변의 공기도 팽팽하게

긴장을 하고 하늘도 일순 흐름을 멈추며

피 묻은 부리와 살 깊숙이 파고 들어간

날카로운 발톱을 주시하는데

물가의 새들은 맹금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만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살아남고 어떻게 함께 날개를 움직여야

대륙과 큰 바다 너머 새로운 물가를 찾아갈 수 있는지

알고 잇었다 매같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 조류들도 있지만 모든 새가 그들의 독무를

따라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서넛이 팔을 끼고 손에 지갑을 들고 사무실을 나서거나

일곱 씩 열씩 모여 떠들며 한 끼의 식사를 위해 몰려가는

점심시간의 마포나 강 건너 여의도 또는 구로동 골목에서

물새들을 본다

간혹 물가 빈터에 세운 운동장에서

축구경기를 보며 함께 소리 지르고

함께 날개를 세우는 군무를 볼 때도 있고

몇 해에 한 번은 어두운 하늘에 촛불을 밝히고

몇 십만 마리씩 무리지어 나르는 새떼들의 흐르는 춤을

볼 때도 있다 새들이 추는 춤은

군무가 제일 아름답다

독수리가 되어야만 살아남는 건 아니다

가창오리나 쇠기러기들도 아름답게 살아간다

그들도 자연의 적자가 되어 얼마든지 씩씩하게 살아간다

 

도종환의 「군무」를 배달하며 - 문학집배원 나희덕 시인

맹금류나 맹수류는 혼자 어슬렁거리지만, 작은 새나 짐승들은 무리를 짓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어요. 군무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도는 것은 그들의 날개가 너무 작아서, 너무 아름다워서였죠. 점점이 흩어졌다가도 어느 순간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갖추어 날아가는 새들을 통해 우리는 자유와 연대가 따로 있지 않음을 배웁니다. 좀더 크게, 좀더 크게, 파이를 키우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논리를 믿는 사람들에게 시인은 말해주고 있어요.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한 슈마허의 통찰을 저 새떼에게서 발견하라고. 악어의 이빨 사이를 쪼아주는 악어새가 없이는 악어도 결국 살 수 없다고.

 

2009, 0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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