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호남정맥 환경탐사를 한 6개월여의 기간을 제외하고 아마도 내생애 최장의 등산시간을 기록한 것 같다. 백담사에서 올라 중청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길고긴 서북능선을 타고 장수대로 내려왔다.
큰비로 무너지고 다시 태풍이 휩쓸고 간 백담사 가는길은 2주전에 이어 여전히 공사중..... 그래서 평소보다 3킬로미터를 더 걸어야 했다.
태풍이 한차례 지나간 하늘은 더없이 맑다... 곧 가을이 온다는 소식을 전하는 듯
백담사는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만해와 일해, 이 시끌벅적함의 장본인들이 이 장면을 본다면 어떤 인상을 지을 것인지 궁금하다. 분명 둘의 인상은 다를 것이다.
하루를 멀다하고 내리는 비로 인해 계곡의 물소리는 한 옥타브 높아진듯 하고
박자와 빠르기 또한 한 템포 빨라진듯 하다.
수렴동은 어쨌든 물과 바위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의 최고봉을 보여주고 있다.
물빛의 유혹에 이끌러 자꾸만 자꾸만 위로 올라간다.
가다보면 또다른 자태의 폭포가 반기고 유혹의 손길을 거부하지 못하고 쉼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유혹의 또다른 얼굴
앞산도 첩첩하고, 뒷산도 첩첩하다. 아마 김소월의 시구절이던가?
바위봉우리가
하늘을 이고 눈이 부시다.
물빛의 유혹
이것이 쌍룡폭포란다. 한달전에는 잘못 소개했다.. 앞의 2단폭포를 쌍룡폭포라고 했는데 그게 아니다. 앞의 2단폭포는 이름이 없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기가 막히는 것이 어디 하나 둘인가? 우리들 인생 또한 기가 막히면서 흘러가거늘....
막히면서 흘러가는 것....
아니면 둘이 되었다가 다시 하나가 되고 다시 흩어졌다가 모이는 것이
우리들 인생이던가?
그래도 어쨌든 만남은 아름답다
그리고 어쩌면 곤두박질치며 떨어지는 것 또한
멀리서 지켜보는 이들의 눈에는 아름다움으로 비쳐질지 모를일이다, 수렴동계곡 널찍한 바위에 누워 처음해보는 셀카질도 그리 나쁘진 않다... 가끔 해볼까 싶다.... 흰머리가 늘어나 흑백처리한점 양해 바람 ㅋㅋㅋ
봉정암 오름길을 거의 올라선 지점
내설악에 서서히 황혼이 물들고
오늘의 행로도 드디어 끝을 보이기 시작한다.
봉정암을 거쳐 소청대피소에서 바라본 설악산의 중심부, 공룡능선과 천화대의 범봉, 그리고 멀리 울산바위가 보인다.
중청대피소의 아침, 눈을 비비고서라도 꾸역꾸역 먹어야 한다. 먼길을 가기 위해.... 여기서 시청자퀴즈.... 아침메뉴에 오른 저 국의 재료는? 이번엔 아마 경품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ㅋㅋ
한계삼거리를 지나고 귀떼기청봉을 오른는 길
사방에 가스가 차서 한치 앞을 보여주지 않다가도 가끔 얼굴을 살짝 내미는 변화무쌍한 성격을 가진 설악
한계삼거리에서 귀때기청봉까지의 1.6킬로미터구간중 1킬로미터는 이렇게 끝없는 너덜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 않다.
귀떼기청봉가는 길의 관목숲지대
멀리 보이는 귀떼기청봉
한계삼거리에서 1.6킬로미터을 올라선 귀때기청봉.... 맙소사! 대승령까지 6킬로미터. 일행중 하나가 한계삼거리에서 중도포기 한계령휴게소로 내려갔는데.... 뒤늦게 그 결정이 옳았음이 판명된다... 인생은 언제나 때늦은 깨우침으로 오듯이...
원래 귀떼기청봉은 쉬운 코스가 아닌 곳..... 그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 오지 않았을 곳, 그냥 몰라서 멋모르고 나선 길.... 그러나 힘든만큼 바로 아래처럼 천상의 경치를 보여준다고 하는데
오늘은 사방이 가스로 덮여 가시거리 제로상태를 만들어 놓았다. 내 인생의 가시거리도 어쩌면 제로일지도 모른다. 카페 '산에 오르다'의 카페지기 '혁명과 삶'님의 사진을 하나 빌려 귀때기청봉에서 바라본 경관을 소개한다.
귀때기청봉에서 대승령으로 가는길의 측백군락(?) 이 지점부터 꽃과 나무는 심충성군의 도움이 필요하다. 심충성군 나오라 오버.... ㅋㅋㅋ
조금씩 가스가 걷히기 시작하고 뒤돌아 한계령쪽을 본 모습
저멀리 귀떼기청봉이 보이고 이 지점부터 거리가 줄어지지 않는다. 대승령까지 5킬로정도 남았고 장수대까지는 7.7킬로정도가 남아있고 길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길이는 거의 지리산종주 수준이고 등산로의 난이도는 설악이다"
서울로 돌아와서 먼저간 선배에게 내가 전한 말이다. 가도 가도 끝이없단 말이 다 튀어나오다니...
설악산 등산안내도와 최신의 이정표가 다르고 예전의 이정표와 지금의 이정표가 심하게 차이가 나는 지점이 이구간인 듯....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을 믿어서는 안되는 곳이기도 하다. 백담사에서 본 이구간의 소요시간과 중청대피소 취사실에서 본 소요시간에 많은 차이가 난다.
꽃을 위안삼아 발걸음을 재촉한다. 금강초롱인가
이것은 또 무엇인고?
금강초롱이 아니면
그냥 초롱이고.....그도 저도 아니면 설악초롱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심충성군... 아니면 요즘 꽃에 부쩍 관심을 기울이는 바람님 나와라 오버 ㅋㅋ
얘도 포함
드디어 껀수를 잡았다. 대승령의 구간이정표에 표시된 구간거리와 소요시간, 한계삼거리에서 귀떼기청봉의 거리는 맞는듯하다. 그런데 소요시간.... 이건 아니다. 1킬로미터나 이어지는 너덜구간을 포함 1.6킬로미터를... 내리막일 경우로 계산했다고 백번 양보해도, 날고 기어도 40분은 아니다.
그리고 귀떼기청봉에서 대승령까지 이건 순전히 새이정표와 거리부터가 틀린다. 새이정표상엔 6킬로미터인데 여긴 5.1킬미터, 더 말이 안되는 것은 2시간 30분이라니! 기가 여기서도 또 막힌다..... 인생이 그렇게 한번 더 지나가라는듯... 내가 너무 느려터졌나 싶어 검색해보니 다른팀들도 한계삼거리에서 대승령까지는 적어도 4시간 40분여가 소요되었다고 하는데 이 이정표에서는 2시간 30분과 40여분... 합치면 3시간 10분이란다... 설악산관리사무소여! 빨리 고쳐주소서... 오도가도 못하는 낙오자가 대거 발생하기 전에, 일반인들은 그대들처럼 날고 기지를 못한답니다. 이정표 중간의 낙서를 신문고라고 생각하셔도 좋을듯
그래도 끝은 있었다. 대승령에서 40여분을 내려오니 조선3대폭포인 대승폭포가 반긴다.
순전히 이놈을 보려고 좀 무리다 싶은 길을 결정하는데 반대하지 않고 순순히 응했다...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가뭄에 약한 대승폭포의 보란듯한 물줄기가 반갑다. 높이 88미터로 곧바로 떨어지는 기세가 힘겨운 몸과 마음을 말끔하게 씻어준다.
토요일 11시에서 일요일 4시까지 일정을 정리하며 하루를 마감한다.
백담사입구버스내려서-백담사(3, 평소에는 이길은 버스이용,지금 공사중)-영시암(3.5)-수렴동대피소(1.2)-봉정암(5.9)-소청대피소(0.7)-중청대피소(1.0)-한계삼거리(5.4)-귀때기청봉(1.6)-대승령(6)-장수대(2.7)
세상에나! 총길이 31킬로미터..... 첫날 9시간 둘째날 11시간 총 20시간
아침에 일어나니 다리가 알플만하다.
'정주 > 세한도-풍경의 발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원의 사계 (0) | 2010.10.27 |
---|---|
임진강을 따라 도라산역까지 (0) | 2010.10.10 |
백제의 미소와 그 주변을 가다 - 서산마애삼존불, 보원사지 개심사 (0) | 2010.08.29 |
내설악의 구중궁궐 - 봉정암, 오세암, 백담사 (0) | 2010.08.23 |
8.15 즈음의 노동당사와 직탕폭포 (0) | 2010.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