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
-복효근
벼 베고 볏짚 거두어간 자리 그루터기에 새순 솟는다
다시 이 새싹에서 이삭이 나와 벼알이 맺힐까
찬 서리 내릴 날도 머지않아서
잎이건 풀이건 다 시들어 주저앉는데
끝났다고 하여도...
끝이 뻔하다 하여도
그 끝까지 가보겠다는
끝을 보겠다는
갈 데까지 가보고 말겠다는 오기창창
저것을 버티는 힘은,
지난날은 밑동부터 잘라 떠나보냈고 눈서리 칠 내일은 믿지 않으니
그 무엇의 과거도 미래도 아닌
다만 지금 여기
가던 길 그냥 갈 뿐인 쥐뿔 같은 현실주의
상록의 소나무나 대나무의
고상하고 관념적인 교훈이 아니다
모름지기 한번 참수 당해준 것의 목에서 솟구치는
저 서늘한 삿대질,
맥없이 주저앉는 것들에 대한 욕설이다
저 맹목의 뿌리가 빚어낸 것이 벼가 되고 쌀이 되고
밤이 되었을 것인즉
독한 것일리라 쌀이여 밥이여
나 오늘 그냥 밥 먹고 내 길 간다
빈 논에 철새 한 무리도 볍씨 주워 먹고 간다
제 갈 길 간다
-복효근
벼 베고 볏짚 거두어간 자리 그루터기에 새순 솟는다
다시 이 새싹에서 이삭이 나와 벼알이 맺힐까
찬 서리 내릴 날도 머지않아서
잎이건 풀이건 다 시들어 주저앉는데
끝났다고 하여도...
끝이 뻔하다 하여도
그 끝까지 가보겠다는
끝을 보겠다는
갈 데까지 가보고 말겠다는 오기창창
저것을 버티는 힘은,
지난날은 밑동부터 잘라 떠나보냈고 눈서리 칠 내일은 믿지 않으니
그 무엇의 과거도 미래도 아닌
다만 지금 여기
가던 길 그냥 갈 뿐인 쥐뿔 같은 현실주의
상록의 소나무나 대나무의
고상하고 관념적인 교훈이 아니다
모름지기 한번 참수 당해준 것의 목에서 솟구치는
저 서늘한 삿대질,
맥없이 주저앉는 것들에 대한 욕설이다
저 맹목의 뿌리가 빚어낸 것이 벼가 되고 쌀이 되고
밤이 되었을 것인즉
독한 것일리라 쌀이여 밥이여
나 오늘 그냥 밥 먹고 내 길 간다
빈 논에 철새 한 무리도 볍씨 주워 먹고 간다
제 갈 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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