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상형의 페이스북에 아래시가 소개되어 있어서 옮겨와 봤습니다. 페이스북의 스타이신 김수상형의 감상도 함께 있으니 읽어볼 만합니다. 구정때 고향갔다오니 요몇일 맘이 편치 않았는데 이 시를 읽으니 약간의 위로가 되는군요. 명절부근에 읽으면 마음을 움직이는 시입니다. 눈물만 자극하는 그런 신파조가 아니라 작품성도 뛰어난 것 같습니다. 시를 읽어본지가 가물가물한 세월인에 오랜만에 이 시를 보고 나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불멸의 오막살이
한 발만 헛디뎌 봐라
고압선이 하늘을 긋고
차들이 질주하는 간선도로
가로등 아래
까치집 하나 걸려 있다
그 누구의 다비에 쓸 나뭇단인가
근면 성실 노력의 가훈을 실천하는
저 집터가 세다...
고압의 정신과 고속의 바퀴와
밤을 환하게 밝히는 불빛이야말로
우리의 경전 아니더냐
물려받은 전답 없이 식구만 많은 집
일찍 죽은 누이의 기억을 가진 집
가문은 텅 비었고 뼈대만 소복한 집
우린 언제 조용해져요 어두워져요
걱정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너희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면
집은 곧 어둑한 적막에 잠길 것이니
태양이 떠오를 때마다
불면의 바알간 눈알을 닦는
저 하루아침의 오막살이
-정병근, 「불멸의 오막살이」전문-
높이 있는 것들은 대체로 외롭고 쓸쓸한 법이지요. 그러나 외롭고 쓸쓸할 틈이 없는 오막살이 한 채가 저 가로등 아래 걸려있네요. 고압선이 하늘을 긋고 차들이 질주하는 그 아슬아슬한 자리에 까치집 하나가 걸려있네요.
한전에서 까치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까치포획에 나선지 오래라고 합니다. 어느 블로그에서 본 까치들의 떼죽음이 선연합니다. 까치는 이른 봄 아직 여린 잎들이 돋아나기 전인 3월에 산란을 위해 집을 짓는다고 합니다. 주로 아카시아나무, 포플러, 미루나무, 은행나무 등에 집을 짓는데, 개발로 나무들이 많이 잘려나가자, 나무대신 전봇대나 가로등에도 둥지를 짓는다고 합니다. 나뭇가지를 물어 둥지를 짓는 까치는 나뭇가지가 아닌 철사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전기가 통하는 철사가 전선에 닿으면 정전사고가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전에서는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 매년 사냥꾼에게 까치사냥을 위탁한다고 합니다. 문명의 눈으로 본 까치는 이제 더 이상 길조(吉鳥)가 아니라 척결의 대상인 셈입니다.
다시 시인의 시를 들여다봅니다. 누구의 다비에 쓸 나뭇단인지 소복합니다. 근면 성실 노력의 가훈으로 이룩한 집입니다. 고압과 고속의 바퀴와 밤을 밝히는 불빛을 경전삼아 이룩한 집터입니다. 그러나 물려받은 전답도 없이 식구만 많은 집, 일찍 죽은 누이의 기억을 가진 집, 그래서 가문은 텅 비었고 뼈대만 소복합니다. 시인의 은유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돌아보면 우리들 곁에는 가로등 아래 까치집처럼, 한 발만 헛디디면 천길 나락으로 떨어질 삶들이 지천입니다. 개발이란 이름에 쓸려나갈 오막살이들이 어디 한두 채 이던가요.
시인은 시작메모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부박한 살림을 생각하면 오막살이는 스스로 청산해야할 대상이지만, 외압에 의해 풍전등화처럼 내몰릴 때 오막살이는 끝내 지켜야할 권리이기도 합니다. 오막살이는 쓸쓸하고 씩씩합니다. 따뜻한 밥상과 정직한 희망이 있는 오막살이는 위대합니다.”
높은 가로등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까치집은 시인의 말처럼 ‘오막살이 부족’의 또 다른 은유입니다.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청년들,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고진감래의 가훈 하나를 걸고 불안한 생계를 꾸려가는 모든 이들이 ‘오막살이 부족들’이라고 시인은 얘기합니다.
오막살이가 갑자기 화려한 성채로 변신하는 기적은 없습니다. 가난은 대물림되고 부는 여전히 상속됩니다. 조용해지지 않는 집, 어두워지지 않는 집, 걱정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는 소리는 늘 듣지만 정작 공부는 할 수 없는 집, 그 아이들 다시 뿔뿔이 흩어지고 나면 적막에 잠길 집, 그런 오막살이의 삶들을 도처에서 목격합니다. 잠들래야 잠들지 못하는 삶, 지긋지긋한 이 가난의 땅을 비행기처럼 이륙하고자 하지만, 결코 이륙을 허락하지 않는 삶들, 그들이 몸을 뒤척이는 사연 많은 봄밤이네요.
누가 저 오막살이의 불면의 바알간 눈알을 닦아줄지, 이 봄날 우리는 또 악착같이 살아내야겠습니다.
* <우먼라이프> 2012년 4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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