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기에
내 나이 이십대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계란을 먹었어요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첫닭 우는 소리와 함께
훈련소의 기상나팔이 되어
새마을 이장님의 새벽종이 되어
천방지축 댕 댕 거렸어요
동이 트는 거리에는
묘한 세상의 도래를 선전하는
입에 발린 온갖 조잡한 아포리즘을 샘플링한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도 헷갈리는
온갖 유인물이 깔리고
그제서야
붉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은혜갚는 까치처럼
벽치기하는 기분으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이 한 몸 불사르고
자기도취라는 이불을 덮고
나는 잠자리에 들었어요
그렇게 끝내 아침형 인간이 완성 되었어요
삼십대 초반
닥치고 가마니를 쓰고
잠시 고향에 머물렀는데
이십대의 습관이 불면증을 가져와서
새벽녘까지 뒤척이다가
깜빡 잠에 드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옆집 첫닭이 울었어요
한시간여 간격으로 울어대는
닭소리에 잠은 다 달아나고
반강제적으로 다시 기형적인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했어요
참다 참다 못해서
옆 집 닭들을 모두 사서
한 달 내내 백숙을 해먹었던 것으로
그 일은 일단락되었지만
그 백숙이 투쟁의 산물인지
타협의 산물인지는
지금도 헷갈리고
닭울음이 떠난 후에는
동네 개짓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서
잠을 더 설쳤다는 사실과
그 후로 백숙만 보면 고개를 돌린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이제서야 고백 합니다
이십대 때 일상이였던
시위현장에서
투쟁적인 구호를 선창하는 것을
동을 뜨다라고 했는데
그 말의 어원이 동이 트다와
무슨 관계인지는 지금도 모르겠고
그 시절엔 동을 잘 뜨는 인간들이
좀 동떠 보이기도 해서
나도 몇 번 어설프게 흉내 내 보았지만
하고나서는 바로 닭살이 돋았어요
어느덧
낙타는 언감생신
한 오라기 가는 실 바늘귀 통과시키기조차 벅찬 나이가 되고 보니
태초에 빛이 있었는지 말씀이 있었는지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는
내 눈으로 직접 안 봐서 모르겠지만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오는 건 확실하고
일찍이 닭과 새벽은 하등 관계가 없다는 사실
(당연히 새벽배송도 상품의 질과는 하등 관계없겠지요)
동트는 새벽이면 무엇하며
동트는 아침이면 또 무엇하리요만은
지금은 그저
목소리 큰 인간들만 봐도
삼십대 때 먹었던 백숙이 꾸역꾸역 올라오기 일보직전이라서
날마다 나는
첫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정하며 살아남을 듯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