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자작시

환선굴 가는 길

빛의 염탐꾼 2008. 8. 24. 18:13

이 지도를 보시면 스위치백을 왜 만들었는지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림판'을 이용하여 통리~도계 구간에 있는 역들의 해발고도를 표시했는데요, 통리역(해발 680m)와 도계역(해발 245m)의 고도 차이가 무려 435m에 달합니다. 그러나 통리역~도계역 구간의 직선거리는 6.3km에 불과하고요. 경사율이 무려 69퍼밀(수평거리 1000m에 수직거리 69m)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이렇게 경사가 심하고 험준한 지대를 열차가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 구간에서 열차가 후퇴했다가 다시 전진하는 방법으로 경사를 극복하는데요, 이를 스위치백이라 합니다. 흥전역~나한정역 구간이 바로 스위치백 구간이지요.

 

 

이 구간에서 여객열차는 보조기관차 없이 운행하고, 대신 승무원이 맨 뒤의 차량에 가서 기관사와 무전기로 교신합니다. 화물열차는 보조기관차를 쓰고요. 새마을호PP는 열차 길이에 비해 구동축의 수가 적기 때문에(동력차의 운전실쪽 2축이 구동축) 이 구간에서 운행할 수 없고, CDC는 모두 동력차(Mc와 M)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성능을 개량한다면 운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대는 경사가 심하고 커브도 심하기 때문에 운행속력을 많이 제한하고, 특히 스위치백 구간은 25km/h 이하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참조: 이 낭만적이고도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구간도 조금 후면 없어진다고 합니다. 올해(08년) 여름 태백에 갔었는데 들리는 말로 철도청에서 이구간을 나선형터널구간으로 만들고 있는데 곧 완공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또하나 문학적 상상력이 조금은 있는 사람들이나 강릉으로 가는 낭만적 철도여행을 하던 젊은이들이 간혹 넘어가던 이구간이 모방송국의 인기있는 오락프로그램에 소개되었은데 지금은 많은 젊은이들이 이 구간을 보기위해 이 열차를 타고 넘어간다더군요.

역시 방송의 무서운 힘......]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환선굴 가는 길

 

 

1

 

백두대간 꼭대기를 지나자 열차는 뒤로 가기 시작했다 열차가 뒤로도 가다니 통리와 도계 사이, 동대구발 강릉행 열차는 곧 사라질 지난 시대의 유물같은, 체인지백 구간을 넘는다 어디 사람만이 힘겨우랴 세상을 버팅기는 모든 것 들에게 일시에 밀려드는 현기증, 이 길 어디쯤엔가 큰 동굴이 하나 있고 또 몇 십리 더 가면 정동진이 있다고 기차는 덜컹거린다 솟아올랐다 갑자기 떨어지는 아득함을 줄이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 구간에서도 아득함은 여전하고 협곡 사이로 울컥 멀미가 인다 어둠에도 깊이가 있을까, 낯 선 이 길도 알고 보면 언젠가 지나간 길이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터널이 많아 장난을 쳤던가 또는 동해 일출을 보기 위해 떠나던 청춘의 길, 일출보다 태백준령의 설경이 더 눈부셨지 지금은 다만 어둠의 깊이를 보고 싶어 넘는 길, 십오리 미로의 동굴에선 거짓말같이 계곡이 흐르고 떨어지는 폭포수, 어둠의 층층계단 아래 눈 없는 도룡뇽과 박쥐떼가 숨쉬고 있을까

 

 

2

 

빛이 곧 어둠이고 어둠 또한 빛인가

 

신기역 버스 터미널, 햇살에 자꾸만 눈이 감기고

천년의 암흑 속에서도 석회암을 녹이는

샘물소리 벌레소리 환청인 듯 울리는데

희뿌연 창을 달아 세상을 희롱하며

세상에 희롱 당하며 달려가는

삶은, 어둠이 보낸 빛의 염탐꾼

손을 들어라, 남은 힘을 다해

뛰어 들어라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증편했다는 대이리행 버스는

좀체 올 기미가 없지만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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