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일 ...... 탁배기(막걸리)를 좋아하던 어떤 이는 오래전 세상을 떠나고 이틀전엔 칼국수를 좋아했던 어떤 이가 세상을 떠났단다. 언론은 오직 탁배기와 칼국수향을 풍기며 그들의 소탈함과 소박함을 상찬하고 우리도 따라 그 소탈함과 소박함 뒤에 감춰진 그들의 권력욕에 대해서는 관대해지는 날들이 이어진다. 어쩌면 우리는 그들로부터 우리속에 감춰진 일말을 권력욕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욕망을 거세당한채 무심의 세월을 살고 있는 날들.... 이 무심함 뒤에 과연 자리잡고 있는 또다른 욕망이 있을 것인가?.... 막걸리와 칼국수는 나도 엄청 좋아라하기에 오늘은 쓸쓸함을 핑계로 종로3가의 오랜된 칼국수집에서 막걸리를 마신다.
내친김에 창덕궁을 거쳐 공간사옥을 눈에 담고 오다.
11월 17일 ..... 두타연 갔다오고 나서 소와 못, 담이나 늪만 보면 홀연히 산신령이 금도끼 은도끼를 들고 튀어나왔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어린애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선과 악, 권선징악이 동화처럼 불 보듯 뻔하면 재미없을 수도 있겠지만 요즘은 한번쯤이라도 그랬으면 하는 생각..... 하여간 나를 뒤덮은 무력감을 어찌할 수 없는 날들이다. 오늘 바라본 안양천 풍경과 전망대가 완성되어 드디어 다음달이면 볼 수 있다는 가슴 뻥 뚫리는 설악산 토왕성폭포.
11월 20일 .... 권력과 자본의 폭력이 기세등등, 제세상인듯 판치는 요즘.... 시가, 문학이, 예술이, 도대체 무얼 할 수 있을까? 지난세기 80년대의 민중가요 가사처럼 '너희에겐 외세와 자본이 있고 폭력집단 경찰과 군대 있지만'(연대투쟁가 중) 우리에겐 도대체 무엇이 있는지..... 휴머니즘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전쟁과 테러소식이 언론을 도배하는 오늘, 아래 시들을 읽어본다. 무섭고도 아름다운.....
소풍갑시다 [허수경]
그대가 나의 오라비일 때, ...
혹은 그대가 나의 누이일 때
그때 우리 함께 닭다리가 든 도시락을 들고
소풍을 갑시다,
아직 우리는 소풍을 가는 나날을
이 지상에서 가질 수가 있어요,
우리는 그 권리가 있어요,
소풍을 가는 날,
가만히 옷장을 보면
아직 개키지 않은 옷들이 들어 있어도
그냥 둡시다, 갈잎 듣는 그 천변에서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것이므로,
돌아올 것이므로,
그날 그 소풍에 가지고 갈 닭다리를 잘 싸고
포도주 두어 병도 준비하고,
그대가 내 오라비로만 이 지상에서
그대가 나의 누이로만 이 지상에서
살아갈 것을 서약은 할 수 없을지라도
오래 뒤에 내가 그대를 발굴할 때,
그대의 뼈들이 있을 자리에 다 붙어 있었으면 합니다,
그 이름 없는 집단무덤에서
우리는 얼마나 머리 없는 뼈들을 보았던가요
울지 맙시다,
작은 소녀가 웅크린 그 부엌 안에 작은 불을 켜며
라디오를 켜며 서약한
많은 나날들이 연빛 웃음처럼,
소녀 또한 연등빛 웃음처럼
저 폭약 많은 오후에 사라져갈지라도
우리들이 먹은 닭다리가
저 천변에 해빛에서 아득해질지라도
오 오 소풍을 갑시다,
울지맙시다
오키나와, 튀니지, 프랑시스 잠[김소연]
우리가 살 수 있는 끝이
여기까지인 게 시시해
소라게처럼 소라게처럼
우리는 각자
경치 좋은 곳에 홀로 서 있는 전망대처럼
높고 외롭지만
그게 다지
우리는 걸었지 돌어보니 발자국은 없었지
기었던 걸까 소라게처럼 소라게처럼
신중해지지 않을게
다만 꽃처럼 향기로서 이의 제기를 할게
이것을 절규나 침묵으로 해석하는 건
독재자의 업무로 남겨둘게
너는, 네가 아니라는 이 아득한 활주로, 나는 달리고 너는
받치고 나는 날아오르고
너는 손뼉을 쳐줘 우리는 멀어지겠지만 우리는 한곳에서 만나지
그때마다 우리가 만났던 그 장소들에서, 어깨를 겯는 척하며 어깨를 기댔던 그 곳에서
˝좋은 위로는 어여쁜 사랑이니, 오래된 급류가의 어린 딸기처럼˝
소라게 한 마리가 집을 버리는 걸 우리는 본 적이 있지
팔 한쪽 다리 한 쪽을 버려가며 걷는 걸 본 적 있지
소라게가 재스민 꽃잎을 배낭처럼 업고서 다시,
걸어가는 걸 우리는 본 적이 있지
우리가 우리를 은닉할 곳이
여기뿐인 게 시시해
소라게처럼 소라게처럼
나의 발뒷꿈치가 피를 흘리거든
절벽에 핀 딸기 한 송이라 말해주렴
너의 머릿칼에서
피 냄새가 나거든
재즈민 향기가 난다고 말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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