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풍이 불어
지금 이 곳은 동풍이 불어 와서 참 서늘해요 산책 삼아 운동장을 도는데 멀리 누르스름하게 색이 변해가고 있는 소나무 한 그루 눈에 들어와서 한참이나 쳐다보았어요 고개 들어보니 저온현상 때문인지 산중턱에서 정체되는가 싶었던 초록줄무늬가 가까스로 천미터 고지 정상에 깃발을 꽂고 있는 게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였어요 여기저기 일찍 심은 모종들이 냉해를 입었다는 소식들이 들리고 소식 끊긴 친구들은 이 봄이 다가는 데도 어김없이 연락이 없어요 그래요 눈과 귀를 멀게 하는 사랑이 냉대성인지 열대성인지는 나는 모르지만 처음엔 미칠 것 같은 발이 견딜 수 없다가도 머뭇머뭇 허리와 가슴을 거쳐 에라 온몸 풍덩, 나도 모르게 견딜만해져서 빠져 나오기 싫은, 삶은 열탕 속 같고 냉탕 속 같은 건 확실해요 지금 이 곳은 송화가루 온통 오월의 편지처럼 날리고 내 마음은 정말이지 눈부시게 서늘해요 햇살이 신록이 새들이 풀꽃들이 아무리 내 눈과 귀를 간지럽혀도 어느 하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동풍이 불어
동풍이 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