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자작시

하여가

빛의 염탐꾼 2020. 8. 10. 13:12

   하여가

 

 

 

   이방언과 정몽주의 피비린내 나는 세력 싸움에서

   애먼 선죽교만 피를 보았음이야 두말하면 잔소리

   일백 번은 고사하고 한 번 가면 다시 못 오는 역사

   끝내 이방언의 새로운 카르텔이 승리했다지만

   어쨌든 덩굴식물의 끝판왕은

   혈연 지연 학연으로 얽히고설킨 만수산 드렁칡

   추석 벌초 때만 되면 조놈의 새키들 때문에 머리가 다 지끈거려요

   베어내고 걷어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랍니다

 

   단심가는 어쨌든 고색창연한 꼴통의 향연

   진토 된 백골로 머드팩 한판

   피부미인으로 다시 태어나시던가 말던가

   그렇다고 단심가가 하여가보다 더 양심적이라는 얘기는 아니고요

 

   정치권력은 늘 조직폭력배의 내용과 양식을 뒷북 치고 따라가기 마련이어서

   조선시대 정치인들의 시가들은 죄다 코스프레의 정점을 찍고 찍어 지금은 이십일세기

   그 오래된 버릇이 어디 가겠어요

 

   태초에 빛이 있고 나중에 소리가 있었나요

   먼저 소리가 있었고 그 뒤에 빛이 따라 왔나요

   오늘도 하늘에서는

   영원히 조우할 수 없는 천둥과 번개가

   몇 초의 시차를 두고 우루루쾅쾅 번쩍번쩍

   (견우와 직녀는 일 년에 한 번 칠월칠석이라도 있는데 말이죠. 실은 번개가 먼저 때리는데 천둥이 왜 늘 번개 앞에 붙는 건가요? 그게 NLPD니 연고전이니 뭐 그런 영역싸움 진영논리 때문인가요?)

 

   일본에서는 한국과 정반대로 까마귀가 길조 까치가 흉조라지요?

   인생은 진지전이라고요? 아니 기동전이라고요?

   천재뮤지션 서태지의 음악들도 알고 보면

   많은 부분 샘플링표절 이였다는데

   갈수록 엇박자를 내는 하여가와 단심가처럼

   역사도 인생도 뭐 별거 있나요?

 

   何如 하여 何如 하여

 

   만수산 드렁칡으로

   얽히고설켜 살아 보자니까요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게릴라성 호우를 만날 수 있는 수도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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