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배추 나는 지금 세상에 절여지고 있는 중이다 황해 짜디짠 왕소금을 온몸에 끼얹고 시퍼런 희망의 풀내를 지워내는 중이다 싱싱함으로 힘을 뽐내던 여름은 가고 알차지 못하면 들판 가득 버려질 수밖에 없는 몸 계절의 바람에 송두리채 뿌리뽑힌 꿈의 생채기를 넘어 생살 도려내는 아픔을 견뎌내야 .. 짧고 길게/자작시 2008.08.24
어느 노동자 이야기 어느 노동자 이야기 -우화 '소가 된 게으름뱅이'를 빌려 그는 말이 없었다 얄팍한 입술로 상대방을 꼬시지도 않았고 남들 앞에서 큰 소리 칠줄도 몰랐다 고등학교 졸업하기 무섭게 큰 공장에 들어가 묵묵히 일했다 사장이 "지금은 게으름을 피울 때가 아니다"라고 훈시할 땐 더 열심히 일했꼬 "근로자.. 짧고 길게/자작시 2008.08.24
원초적 본능 원초적 본능 -1992년 8월 7일 동성로에서 사랑도 과하면 피를 보는 것일까 같은 시간 같은 거리 사방은 여러 본능들이 싸우는 처절한 격전장 샤론 스톤에 발기된 일군의 성기들은 그녀의 송곳에 난도질 당하며 침대 위로 정액을 뿌렸고 조국의 허리를 향해 달리던 통일선봉대는 군화발에 짓밟히며 짐승.. 짧고 길게/자작시 2008.08.24
귀향일기.2 귀향일기.2 빛바랜 덕담 한마디 나눌 수 없었다 차례상 끝나기 무섭게 고개 돌리며 복주 한잔 받아넘기고 묵묵히 자리만을 지키고 있었을 뿐 한웅큼씩의 침묵을 안주로 씹으며 근거없는 희망과 근심어린 위로의 말 한마디 들려줄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아진 것이라곤 선물 꾸러미의 호사한.. 짧고 길게/자작시 2008.08.24
귀향일기 1 귀향일기.1 -어머님 전 시대에 멀리 뒤떨어진 아들이 되어 다시 찾는 올해는 너무나도 먼 귀향이었습니다 피눈물로도 육십 고개 보란 듯이 넘겨온 어머니 어머니의 투명한 눈물 속 깊이 노동의 연륜으로 살아 뛰는 분노를 봅니다 이 저녁 어머니의 긴 침묵 속으로 내년엔 중고 자가용이라.. 짧고 길게/자작시 2008.08.24
장마전선 장마전선 아침상 물리며 서둘러 준비하라 내 머지않아 바다와 산맥을 넘어 북상할 테니 피비린내 나는 비의 전선을 펼칠 터이니 마른 침 삼키며 죽어가는 풀포기야 배부른 자의 업보를 지게에 얹고 소처럼 우직한 너희들만 도적으로 쓰러지고 있으니 땅 끝을 파고드는 뿌리는 어딜 가고 스치는 잔 바.. 짧고 길게/자작시 2008.08.24
옹이 옹이 눈물이 응어리진 자리에서는 톱날의 위력도 주저앉고 만다 거짓된 돌출을 마다한 진실 치떨리는 분노로 살아온 시대의 증인이기에 칼끝으로 불어오는 세월의 바람 앞에서도 흔들릴 수 없는데 짓밟힌 무게로 울어대는 외침은 누구의 것이기에 저토록 태연할 수 있을까 곧게 크기만을 강요하는 .. 짧고 길게/자작시 2008.08.24
우수 우수 기만의 푸르름을 부르지 마라 마법의 향내 풍기며 다가오는 우수의 바람아 철지난 희망를 가슴 깊이 묻으며 쓰디쓴 분노만 되새김질하는 배반의 계절 속에서 허골로 고꾸라져 능선으로 희어진 피빛 붉은 한풀이 키낮은 갈대로 오열하는데 아침 찬거리 하나 마련해 놓지 못한 채 남루한 잠마저 .. 짧고 길게/자작시 2008.08.24
겨울비 겨울비 꿈결 속으로 유년의 언덕배기 친구들이 아른거리고 아침마다 어줍잖은 해몽으로 고향으로 수화기를 들곤한다 찢어진 선거 공고판 미소 띤 후보자의 사진 앞으로는 여느 해보다 더한 찬바람이 불어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며 무심하게 지나가는데 은반의 하늘로 울려 퍼질 캐롤송도 내일을 점치.. 짧고 길게/자작시 2008.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