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같지만 굴뚝같지만 이십일세기 산타는 다들 비만이라서 굴뚝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해요 국제빈민구호단체와 국제난민기구의 모금광고를 보고 생각한다 단돈 만원의 기아와 가난에 대해 생각한다 거대 군산복합체의 전쟁과 공포에 대해 생각한다 어릴 적 시골.. 짧고 길게/자작시 2019.01.22
線을 지우다 線을 지우다 내 마음의 점이지대에는 회색분자와 기회주의자들이 모여 산다 내가 善하고 柔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 이유는 그들로부터 빚 입은 바 크다 그 지대의 공기는 황사와 미세먼지로 온통 뿌옇고 흐린데다가 모두 침침한 눈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것을 소리 소문에 의지하고 있.. 짧고 길게/자작시 2019.01.17
바람의 사생활 바람의 사생활 이타성도 알고 보면 지극히 개인주의라서 중요한 건 언제나 나의 느낌이다 바람은 지금 이중생활 중이다 여름과 겨울에 두 집 살림을 차리고 그 생활을 꾸려가기에 지극정성이다 게다가 그 두 집을 오가는 사이에 봄가을이 있어 정신없이 왔다갔다 머릿속이 한마디로 문란.. 짧고 길게/자작시 2019.01.11
똑똑해요 똑똑해요 노크 좀 하세요 헛기침이나 인기척이라도 내든지 나도 엄연히 사생활이 있다니까요 내가 뭘 감추었다고 그래요 똑똑히 보세요 절대로 나쁜 짓 하지 않았어요 엄마는 분명히 내 일기장도 훔쳐봤을 꺼야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걸 보니 진짜인가 보네요 안에 누구 없어요 .. 짧고 길게/자작시 2019.01.05
미역국 미역국 -단양에서 우리는 서로 미끄러지는 사이가 되어서 꾸역꾸역 만나 덕담을 나누고 미역국을 먹는다 어머니 미수를 위해 사대가 모여 앉은 단양 도담삼봉의 유치한 스토리텔링에 위선적인 박장대소로 답하고 뻥 뚫린 석문을 액자 삼아 단체가족사진을 한 판 박고 사인암과 구담봉 옥.. 짧고 길게/자작시 2019.01.03
변기 유감 변기 유감 한 발 더 다가서 주세요 사랑스러운 저 속삭임은 왠지 폭력적이다 가까이 더 가까이 조금씩 다가섰더니 악몽을 꾼 것도 아닌데 자주 오줌을 지렸다 알콜 의존증이 있는 내 친구는 요즘도 가끔 이불에 세계지도를 그리는 특별한 재주를 가졌다 저를 깨끗이 사용해 주신다면 제가.. 짧고 길게/자작시 2018.12.26
허수아비 허수아비 허수는 아버지가 없다 아니 존재하지만 조선시대 홍길동이 그랬던 것처럼 한 번도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불러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맨 정신으로 마주앉아 대화라는 걸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허수의 아비는 젊어서 노름과 여자에 빠져 적지 않은 가산을 탕진했다 한마디로 .. 짧고 길게/자작시 2018.12.21
까치밥 까치밥 요즘 내가 향하고 있는 곳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며칠 전에는 지인 몇으로부터 수동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교회에 다니는 앞집 누나가 찾아와서 선지자요 절대자요 자주 설법을 펼치지만 나는 그걸 외롭다로 듣고 무섭다로 읽은지 이미 오래다 오래전에 전.. 짧고 길게/자작시 2018.12.16
역광 역광 사랑이 깊어지면 맹목이 되는 걸까 집착이 깊어지면 맹목이 되는 걸까 눈이 먼다는 건 그대의 배후에서 빛이 쏟아지고 오랫동안 눈부시게 서로가 서로를 보지 못하고 마주 서 있다는 것 극성팬과 스토커는 이음동의어라서 죽어서도 스토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예수님과 석가모니.. 짧고 길게/자작시 2018.12.09
수렵금지구역 수렵금지구역 이 숲의 수컷들은 임금협상기간이나 해고복직투쟁 시기가 되면 비로소 늑대가 된다 먹잇감을 놓고 사냥개처럼 으르렁거리다가 이빨로 물어뜯는 자세를 취하기도 하는데 이마저도 한물간 동물서커스가 된 지 오래 되어서 요즘은 볼 기회가 드물다 철마다 벌이던 서열싸움.. 짧고 길게/자작시 2018.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