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밀도 안개의 밀도 2016. 9. 12 안개가 좋다 성에 낀 창이 좋다 잿빛이 좋다 회색이 좋다 오리무중이 좋다 침침한 눈이 좋다 황사가 좋다 미세먼지가 좋다 중국발이 좋다 좌충우돌이 좋다 뒤죽박죽이 좋다 연쇄추돌이 좋다 저기압이 좋다 심심함이 좋다 가시거리 제로가 좋다 영영이별이 좋다 어영.. 짧고 길게/자작시 2016.09.12
봄 3 봄 3 황금비녀를 꽂은 대왕대비가 얇은 발 뒤에서 명령하면 어리고 연약한 왕은 눈만 끔벅거리고 망보기를 끝낸 신하들은 무르팍을 꺾으며 한 목소리로 외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짧고 길게/자작시 2016.04.23
봄 2 봄 2 한 아이가 노랑풍선을 고르자 다들 노랑풍선을 달라고 조르고 또 한 아이가 빨강풍선을 불자 다시 빨강풍선을 달라고 조르고 또 다른 한 아이가 초록풍선을 흔들자 또다시 초록풍선을 달라고 조르는 대책 없이 떼쓰는 꼬마악당들 짧고 길게/자작시 2016.03.28
메밀꽃 필 무렵 메밀꽃 필 무렵 2015. 9. 7 출생의 비밀이라도 가지고 태어났더라면 저 강물처럼 아무렇지 않게 흘러갈 수 있었을까 왼손잡이에 힘깨나 타고 났더라면 물가의 저 바위처럼 더 아무렇지 않게 박힐 수 있었을까 따가운 햇살 아래 소금을 뿌린 듯 메밀꽃은 지천으로 피어나고 아비를 아비라 부.. 짧고 길게/자작시 2015.09.11
2015년 8월 24일 오키나와 쯤에서 불어오는 태풍과 판문점 근처에서 들려오는 흉흉한 풍문에 오늘은 잠을 설칠 듯 하다. 비바람에 실려오는 소문같은 시 세편을 올려본다. 시대가 많이 변했음을 느끼며 제발제발 무사히 넘어가길 바란다. 혁명이 있어야 될 지 없어야 될 지는 암튼 나도 아리송하.. 짧고 길게/자작시 2015.08.24
풍문으로 들었소 풍문으로 들었소 2015, 5, 12 그녀는 붉은 노을이라고 했다 필리핀 태생이라고 했다가 태평양 근처 괌 어딘가가 고향이라고 은근슬쩍 비틀었다 어쨌든 동남아에 한국이름은 또 뭡니까, 혹시 이중국적 그게 말입니다 다국적은 어느 날 갑자기 국적불명이라서요 그녀는 하루 아침에 돌핀으로 .. 짧고 길게/자작시 2015.05.12
사노라면, 사노라면, 언젠가는 햇살론과 미소금융을 지나야 해요 새우를 먹고 잠자리에 들지 않았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가슴을 쫙 폈더니 그래서 키가 안 컸나 봐요 그건 국민체조를 자주 해서 그렇단다 얘야 어머니는 요즘도 얘기해요 물가에도 가지 말고 물가애들 일랑 가까이 하지 말라고 시대.. 짧고 길게/자작시 2015.04.19
봄비, 실어 나르다 봄비, 실어 나르다 간밤의 기억 좀 찾아 달라고요 네 맞아요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 순간적으로 취했나봐요 봄꽃들이 언제나 한철이라 기억도 따라 져버렸나 봐요 죄송해요 저희가 사람을 실어 나르지 기억을 실어 나르지는 않거든요 그렇지만 꿈이었다고 말한다고 다 잊혀지는건 아.. 짧고 길게/자작시 2015.04.14
봄 1 봄 1 젊었을 땐 남부끄럽다며 마다하시던 누님이 사다준 원색의 꽃무늬 셔츠를 걸치고 어머니, 혼잣말을 하신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구나 맘에도 없는 말 그만 하세요, 어머니 짧고 길게/자작시 2015.03.30
봄밤 봄밤 손연재가 리본을 들고 마루로 올라서자 승무의 장삼자락과 흰 수건이 나풀거린다 온몸의 힘을 빼고 모든 관절을 꺾어라 지켜보는 코치진의 목소리가 낮게 깔린다 농악에도 사계가 있다면 열두발상모는 분명 봄의 손목에 들려있는 수구, 한창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수양버들 한 그루 .. 짧고 길게/자작시 2015.03.23